목숨을 던지는 노동자들 - <UNSTOPPABLE> 영화

제 형과는 다르게 토니 스콧은 순도 100%의 장르 영화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그 안에 날카롭게 현실의 문제들을 집어넣곤 하는데, 지난번의 <펠햄 123> 같은 영화가 그랬다. 이 영화는 겉보기엔 평범한 지하철 하이재킹 영화였지만,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21세기 테러범이 돈을 어떻게 버는가 하는 문제였다(대량의 현금을 요구하고, 이를 통해 금값을 올리고, 그걸 이용해 엄청난 이익을 얻는). 그는 누구보다 장르 영화를 매끈하게 잘 만드는 장인 감독이지만 <펠헴 123>이나 이번의 <UNSTOPPABLE> 같은 영화를 보면 장르적 세공술에만 집중하는 것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UNSTOPPABLE>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이 영화가 묘사한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이 영화는 장르의 쾌감 뒤에 숨어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 노동자들의 처지를 너무나 구구절절하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이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한데, 해고 직전의 노동자가 죽을 고생을 한 다음에 복직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방점은 물론 죽을 고생이다. 덴젤 워싱턴은 원래 곧 해고될 처지였지만, ‘그저그런 고생이 아니라 죽을 고생을 한 덕분에 도시도 구하고 해고도 피한다.

영화가 끝나면 등장 인물들이 현재 어떤 삶을 보내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덴젤 워싱턴은 정년을 다 채운 뒤 명예롭게 퇴직했고(with full benefit!) 크리스 파인도 가족과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물, 즉 맨 처음 실수로 사고를 유발한 직원은 지금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나름 대형철도회사의 직원이었는데 이 사고로 한 순간에 직장을 잃은 것이다. 도시 하나를 날릴 수 있었던 사고를 낸 인물이니 직장을 잃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덴젤 워싱턴이나 사고로 죽은 원로 기관사와 비교해보면 이 뒷이야기는 개운치 못한 뒤끝을 남긴다. 간단하게 말해 그는 죽을 고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에서 잘린 것이다. 그는 초반에 그렇게 포기하는 게 아니라 덴젤 워싱턴과 원로 기관사처럼 죽을 고생을 했어야만 했다.


좀 더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 덴젤 워싱턴도 어차피 해고당할 처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영웅행세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어차피 잘릴 회사,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왜 굳이 죽을 고생을 자처한 것일까? 그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 하나는 두 딸을 구하기 위해서다. 기차가 폭발하면 도시 전체가 위험하다고 했으니 지금 그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딸을 구하기 위해서 영웅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두 번째는 원로 기관사의 죽음으로 인한 결심이다. 모르긴 하지만 덴젤 워싱턴과 이 기관사는 절친한 사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폭주 기관차를 멈추려다 죽고 말았으니 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중요한데, 그는 처음부터 복직을 위해 폭주 기관차를 쫓아갔을 것이다. 설마 회사를 구한 기관사를 해고하겠는가 라는 계산. 그리고 영화의 결론에 이르면 이 세 번째 이유만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두 딸은 애초에 도시를 피해 멀리 도망칠 수 있었고(심지어 사고 현장에 제일 가까이 오는 것이 두 딸이다), 덴젤 워싱턴과 영화는 그 이후에 원로 기관사에 대한 어떤 애도의 감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영화의 마지막, 이들의 영웅적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은 오직 복직 뿐이다.

그러니, 너무 노골적이라 말하기 망설여질 정도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결국 노동자여 회사를 위해 목숨을 바쳐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를 다시 생각하면 <UNSTOPPABLE>은 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한 편의 멜로드라마로 보인다. 회사를 향해 보내는 간절한 구애의 손짓. 하지만 여기엔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역설이 숨어 있다. 목숨을 바치되, 정말 죽어버리면 안 된다. 만약 정말로 죽는다면 영화 속의 노 기관사처럼 그저 잊힐 뿐이다. 이 영화가 어느 순간 무섭게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