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 오브 라이프> - 우주가 겨우 그 정도임? 영화

* 스포일러 있습니다.


0. 씨네큐브에서 <트리 오브 라이프> 봤습니다.

 

1. 대강 마음의 준비는 하고 갔지만 그래도 좀 낯설었습니다. 뭐랄까요, 안드로메다로 가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화산이 폭발하고, 공룡이 뛰어다니고, 세포가 분열하는 모습이 나오더니 급기야 우주의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그러다보니 BBC 다큐멘터리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게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멋있는’ 대사들이 장엄한 음악과 함께 등장합니다. 어쩔 수 없이 걱정이 들더군요.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해서 어떻게 뒷감당을 하려는 걸까?

 

1-1. 게다가 이런 난해한 이미지들이 처음에만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의 중간중간에도 인서트처럼 등장하더니 마지막에는 아예 천국(기독교의 천국은 아니고 그냥 낙원?)의 이미지를 보여주고야 맙니다. 아들 숀펜과 아버지 브래드 피트, 그리고 어머니, 동생들이 다 함께 등장해 엄청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마구마구 연출합니다. 안드로메다로 시작해서 안드로메다로 끝나는 건데요, 솔직히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2. <트리 오브 라이프>의 한 쪽 편에 이런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있다면 또 한 쪽 편에는 집요하고 사실적인 가족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이 부분만 따로 떼놓고 본다면 거의 다른 영화 같기도 해요. 게다가 그 솜씨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억압적인 가부장적 아버지와 어린 자식들 사이의 갈등을 날카롭게 묘사하는데, 그 뾰족뾰족한 순간들을 잡아낼 때는 마음이 움찔움찔 하더군요.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했기 때문에 하기 싫은 것들을 했다’ 라는 대사라든지, ‘절 죽이셔도 좋아요’, ‘엄마는 나만 사랑해!’ 같은 대사들은 특히나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2-1. 그런데 영화가 차용한 서사 구조를 보면 한 눈에 오이디푸스 서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서사는 간단하게 말해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합하려 한다는 것인데,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전부 오이디푸스처럼 행동한다면 세상이 망할 테니 아버지는 이를 금지시키죠. 결국 아들은 아버지의 법 앞에 굴복하여 어머니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말을 따르게 됩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미성숙한 주체가 소위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뭐 그런 얘기를 프로이트가 했는데...
     <트리 오브 라이프> 는 이 공식을 매우 충실하게 따릅니다. ‘정신분석학 입문’ 수업을 듣는 학생이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영화 속 아이들은 어릴 때는 아버지와 다정하게 잘 지내다가 나이가 들기 시작하자 슬슬 반항을 하기 시작하죠. 게다가 성에도 눈을 뜨는데 그 대상이 어머니인 것이 의미심장합니다(어머니의 슬립을 몰래 훔치는 게 대표적이죠). 이때부터는 그냥 폭풍 갈등입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아버지가 출장 가면 어머니와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죠. 풀밭에 누워 묘한 분위기도 한 번 연출해보고 말이죠.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엄마는 나만 사랑해!’ 같은 핵심 대사를 던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 끝에 도달하는 결말은 물론 아버지의 품에 다시 안기는 것입니다.

 

3. 영화의 서사가 오이디푸스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얘기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들과 이 오이디푸스 서사가 제대로 된 상호작용을 못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3-1.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한 글들을 보면 ‘변증법’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초월적인 세계를 그린 부분과 가족을 그린 부분이 서로 지지고 볶아서 ‘합’이란 걸 만들어낸다는 것인데, 저는 이 영화에 제대로 된 합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생명의 나무’란 제목이나 영화의 많은 장면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듯이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우주적인 차원에서 ‘생명’ 그 자체를 그리려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 그것도 안전하게 아버지의 품에 안착하는 결말로?
     아무리 좋게 봐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설마 이 감독이 우주의 근원에는 오이디푸스 서사가 있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닐 테니 뭔가 엥? 하는 느낌이 듭니다.

 

4. 그래서 공룡이 뛰어다니는 것도 좋고, 브래드 피트랑 아이들이랑 싸우는 것도 다 너무 좋았는데 이 두 개를 붙여놓고서는 ‘이것이 생명의 나무다!’ 라고 하는 것에는 별로 동의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테렌스 멜릭 감독이 훨씬 더 긴 버전의 영화를 편집하고 있다고 하니 아직 완전히 실망하기는 이른 것 같고, 이쪽을 기다려봐야 할 듯합니다.
 

그 외. 브래드 피트가 정말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면서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스타 이미지에 기대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그리고 아이들도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이 섞인 애매한 연기를 잘 소화해냅니다. 다른 영화에서도 조만간 또 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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