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장 르누아르 감독님의 <토니>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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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앙드레 바쟁은 장 르누아르에 대한 글에서 <토니>를 여러 번 봐야 할 영화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번 감상해서 자신의 영화 보는 감을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2. 그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만듦새가 좀 허술해 보이기도 하고(어딘지 무성영화 같기도 하고), 이야기 전개에 여백(나쁘게 말해 구멍)이 많으며, 종종 너무 감상적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일단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그 자체로 완벽한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앙드레 바쟁은 <토니>의 이런 점을 두고 ‘핍진성’이란 단어를 씁니다. 실제 현실과 영화 속 현실이 어느 정도로 맞닿아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현실의 어설픈 흉내내기가 아니라 독립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거죠.
3. 드물지만 영화가 그 자체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세계를 한 번에 알 수 없듯이 이런 영화도 한 번 보고는 알 수가 없겠죠. 이를테면 <토니>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했다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결국 이 사랑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는 것. 하지만 이 줄거리를 갖고 장 르누아르가 손을 대면 이런 이야기를 품고 있는 세계 하나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와 그 이야기를 내포한 세계 자체를 창조하는 영화는 완전히 다른 종류일 겁니다.
4. <강박관념>으로 네오리얼리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루키노 비스콘티는 장 르누아르의 조감독을 지낸 경력이 있습니다. 어쩌면 비스콘티의 머릿속에는 <토니>가 그 원형으로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 사건의 영화화, 비전문배우들의 기용, 실제 공간에서 촬영하기(세트를 사용하지 않기), 자연광의 적극적 활용 등. 이런저런 이유에서 <토니>는 계속해서 봐야할 영화입니다. 다음에 볼 때는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받고, 무엇이 새로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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